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쿠다 미츠오 (문단 편집) == 커리어 == [[토미노 요시유키]]의 [[바다의 트리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으나 애니메이션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아시다 토요오]]의 스튜디오 라이브에서 일하는 선배가 "선라이즈 일이 바쁜데 콘티를 해독하고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라고 해서 도와주러 갔더니 콘티를 잘 해독한다는 소리를 듣고 당일 채용되었다고 한다. 신인인데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에서 설정제작이라는 일을 맡았고 이어서 [[최강로보 다이오쟈]]의 설정 제작에 참여하였다. 애니메이션 일은 재미는 있었지만 급료도 낮고 보험 가입도 안 되는 불안정한 업계라서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했고 한 번 집안의 가업인 포목점을 잇기 위해서 선라이즈를 퇴사했지만 이후 [[이즈부치 유타카]]의 중재로 초력로보 가라트의 스태프로 복귀했다. 가라트에서 만난 [[칸다 타케유키]]가 후쿠다에게 콘티 그리는 법을 가르쳤고 [[기갑전기 드라고나]] 때 칸다가 "너는 연출을 맡겨도 될 것 같다." 라고 해서 본격적인 연출을 하게 되면서 연출가로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다.[* 흔히 토미노의 제자로 잘못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후쿠다가 토미노와 만난 것은 [[기동전사 V건담]] 때 딱 한 번 참여한 것과 [[기동전사 건담 SEED]] 제작 때 만나서 조언을 받은 것 정도가 고작이다. 자신은 토미노의 광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발언하고 있다. 후쿠다는 칸다의 제자라 보는 것이 맞다.] 이 때문에 후쿠다는 자신의 스승으로 칸다 타케유키를 언급한다. 설정 제작 및 연출 책임 등에서 후쿠다 미츠오(福田満夫 혹은 ふくだみつお)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초창기 설정 제작 담당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신이 감독한 작품에 나오는 설정들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작성, 감수한다. 그후 [[마신영웅전 와타루]]와 [[마동왕 그랑조트]]의 연출을 거쳐 [[용자 엑스카이저]]에서 연출 치프로 승격하고, 이 3작품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뱅크신을 담당했다. 실력이 좋아 선라이즈에선 뱅크 신의 달인으로 불렸다고 한다. 영웅미가 있고 세련된 연출을 구사한다. 한국에서 그랑죠 팬들이 좋아하는 소환 신이나 필살기 뱅크샷도 이 사람 작품이다. 특히 용자 시리즈에서 후쿠다가 남긴 연출의 영향은 매우 커서 [[야타베 카츠요시]] 감독은 [[태양의 용자 파이버드]]와 [[전설의 용자 다간]]에서 후쿠다가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연출을 그대로 따서 넣을 정도였다. [[타카마츠 신지]]가 감독을 맡게 되면서 후쿠다에서 좀 벗어난 연출을 볼 수 있게 된다. 와타루 시리즈도 2부터는 후쿠다가 참여를 안 하는데 1에서 후쿠다가 연출한 등룡검 연출이랑 2에서 나오는 성룡검 연출이 똑같을 정도. 거기다 결국엔 딴 사람이 하는 거라 뭔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 1991년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에서 연출에 스토리 보드까지 같이 해내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엔 OVA로 발매된 사이버 포뮬러 더블원과 제로에서 원안 감독 각본 연출을 혼자서 소화해내며 작품들을 성공시켰다. [[기동전사 V건담]]에 콘티로 딱 한 번 참여한 일이 있으며, 이때 토미노 감독에게 연출 공부를 사사했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2002년 기동전사 건담 SEED의 총감독이 되기에 이른다.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를 끝낸 후 [[GEAR전사 덴도]]를 감독했으며, 격투 크래시 기어 터보에 3D치프로 참여해 액션 장면을 만들었다. 시드 이후는 그냥 특별한 작품이나 프로젝트는 없고 시드 관련 설정이나 프라모델 감수, 선라이즈 내에서 다른 애니메이션의 연출과 제작을 지원하는 업무를 보는 중이다. 업계에서 퇴출되어서 백수가 된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으나 "제가 일을 안 하면 가족과 어떻게 먹고 삽니까" 라며 부정했다. 한때 프리랜서였지만 이후 다시 선라이즈 일만 봐주는 걸로 돌아간 모양이다. 그리고 [[PSP]]로 발매된 [[무장신희]]~배틀마스터 Mk.2~의 오프닝 무비의 연출을 담당했다. [[http://youtu.be/8va7IvZ8Pc8|#]] 한동안 뜸하다가 2014년 10월 신작 애니메이션인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라는 작품에서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2019년 3월 29일, 일본 후쿠시마현 미하루정과 GAINA, 후쿠시마 GAINA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https://youtu.be/XzW4HUYDmYI|메고히메 MEGOHIME 재회의 용앵(愛姫MEGOHIME 再会の滝桜)]]의 감독으로 다시금 감독직으로 복귀했다. 다만, TV 시리즈는 아니고 지역 PR 애니메이션이며, 러닝 타임도 10분 내외로 꽤 짧은 편. 그런 주제에 제작진[* 캐릭터, 스토리 감수, 엔딩 애니메이션 연출을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맡았다.]과 성우진이 후덜덜하다.[* [[메고히메]] 역에 [[토야마 나오]], [[다테 마사무네|마사무네]] 역에 [[시모노 히로]], [[코다이인|네네]] 역에 [[후쿠엔 미사토]], [[도요토미 히데요시|히데요시]] 역에 [[이나다 테츠]], 네네 친위대에 [[사이토 유카]], [[토쿠이 소라]], [[오오하시 아유루]] 등등.] 사실 작품간 공백기가 길어서 백수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업계에서 묻혔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전자는 음해에 가깝다. 이 정도로 공백기를 두고 감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으며 설정 제작이나 제작 진행도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애초에 부양 가족도 있으며 애들 나이도 어렸는데 업계에서 쫓겨났거나 백수였으면 집안이 망했을 것이다. 엄연히 선라이즈 내에서 업무 활동을 보고 있다. 이렇게 보이는 건 시드만 10년을 붙잡고 있던 그의 활동 때문이다. SEED TV판 이후 그걸 스페셜 에디션으로 제작, 그 후 HD 리마스터로도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SEED HD 스페셜 에디션이란 것도 제작 중이라고 한다. 작품 인생의 대부분을 SEED를 만들고 수정하는 작업에 바친 셈인데 이것을 두고 이 시기에 아무것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작품 여러 개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작품으로 평생 해먹는 사람도 많다. 비슷한 직종인 만화가도 히트작 하나 내면 그거 후속작이나 소장판 등으로 사골이 녹아내리도록 우려내는 작가도 많고, 작곡가나 가수도 히트곡 하나로 평생 먹고사는 원 히트 원더들도 많다. 히트작품 하나만으로 평생 먹고 사는 사람은 창작 분야를 막론하고 널리고 널렸다. 기형적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드문 일이긴 하지만 시드가 너무 잘나가서 20년 가까이 상품성이 살아있는 걸 어쩌겠는가... 그러므로 후쿠다가 업계에서 매장됐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후쿠다와 같이 작업을 하는 걸 선호하는 애니메이터 파벌도 있고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4~5년 간격으로 작품 내놓는 경우도 허다한데 후쿠다는 SEED 리마스터 작업도 포함하면 거의 공백없이 작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아무리 후쿠다가 욕을 먹는다고 해도 후쿠다를 지지하는 팬층도 있고, 기어전사 덴도를 제외하면 데뷔 이래 망한 작품이 없고 선라이즈와 반다이에 막대한 돈을 안겨주었다. 굳이 매장당할 이유가 없다.[* 애니 업계는 [[나카무라 카즈오]]라든가 [[사다모토 요시유키]]처럼 인성이 개차반인 인간들도 자기 파벌과 실적만 있으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세계이다. 파벌과 실적만 있으면 중범죄자로 타락하지 않는 한 인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드를 싫어하는 쪽은 후쿠다 미츠오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용자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후쿠다는 일본에서 몇 안 되는 메카물 전문 연출가이며 연출 실력이 뛰어난 편에 들어가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드는 대성공한 작품이다. 이 정도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일본 전체를 통틀어 20명도 안 된다. 아무리 이미지가 개차반이 나도 특수 인력으로 어디든 불려나갈 인물이란 것이다. 시드도 스트라이크 건담이나 프리덤 건담이 처음 나올 때 연출 같은 건 호평을 받았고 이리저리 오마주 될 정도였다. 시드가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건 연출 이전에 감독의 인성이나 스토리 같은 문제가 종합적으로 얽혀서 작품이 터진 것에 가깝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후쿠다는 연출력 자체가 형편없다기보다는, 전쟁물 같이 각 장면마다 다양한 연출이 필요한 장르 및 감독이나 프로듀서 같이 제작진 전체의 리더격인 직책에서는 한계를 보여주고 본인의 그러한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는 타입에 가깝다. 결국 후쿠다는 본인에게 안 맞는 장르와 위치에서 일한 탓에 연출력이 평가절하된 것이다. 만약 후쿠다가 시드 시리즈에서 감독이 아니라 조연출·서브 각본가 등 보조적인 직책을 맡았거나, 아예 건담 시리즈 같은 전쟁물을 일체 연출하지 않고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와 비슷한 레이싱물의 제작에만 참여했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의 평가가 지금처럼 박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후쿠다가 시드 리메이크 작업, 메고히메, 크로스 앙쥬, 건담 빌드 다이버즈 리라이즈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일을 계속 받아서 했다는 팩트가 있는데 후쿠다는 업계에서 찍혔다고 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를 증명하는 작품이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인데 여기서 후쿠다의 직책은 프로듀서이다. 프로듀서할 정도면 선라이즈 내에서도 후쿠다의 지위가 꽤 높다는 걸 의미한다. 프로듀서는 인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2020~2021년에 들어서는 [[건담 빌드 다이버즈 Re:RISE]] 등의 [[건프라 배틀]] 시리즈에서 간간히 연출로 참여하더니, 건담 시드 세계관 재기동 차원에서 다시 추진되는 [[건담 시드 극장판]]의 감독 지위가 유임되며 다시 [[선라이즈]]의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선라이즈 내에서의 지위 및 그가 연출한 작품의 상업적 흥행과 별개로 본 문서에 나온 여러 문제점 탓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미묘해졌다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 2020년에는 건담 빌드 다이버즈 리라이즈의 일부화들의 연출을 맡았으며 그가 담당한 화는 연출에 대해서 호평이 많다. 이렇게 연출에 대해서는 상당히 재능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인데 그의 커리어에 가장 큰 금이 가게 한 것은 바로 '''아내'''와 '''인성'''. 사이버 포뮬러 사가에 와서 기획 도중에 스토리가 안 풀린다고 아내와 의논을 하다가 아내인 모로사와 치아키를 전격적으로 작품의 각본가로 발탁하는 일을 저질렀고 이후 아내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내 모로사와의 각본가로서의 역량이 개판이었던 탓에 과거의 후쿠다의 연출적 재능에 반해서 그의 팬이 된 사람들도 학을 떼게 되었다. 그의 작품 커리어를 모로사와 참여 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다. 후술할 내용처럼 현재 선라이즈 내에서 후쿠다 미츠오의 지위가 나름대로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리즈 시절에 비해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부진해진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